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코코샤넬은 누구인가?

패션 브랜드

by hambara 2009. 8. 18. 00:22

본문



Gabrielle bonheur chanel
(가브리엘 샤넬) 별명: 코코 샤넬
1883.08.19 - 1971.01.10

 당당하고도 개혁적인 여성, 세련미와 정감 넘치는 얼굴과 사교성 높은여성
도전정신이 강하고 말보다는 행동을 먼저 보여주는 여성, 그리고 모든것을 잃기만한 가련하고도 불쌍한 여성.

특이사항 : 제2차 세계대전 중 암호명 '모델의 모자'로 나치스 첩보원 활동
경력: 1955~ : C자가 서로 교차한 모양 라벨 고안
1921~ : 향수 샤넬 넘버 5 출시
1915~ : 여성복 디자이너로 패션계 진출
1910~ :파리 여성 모자점 개점

 

그녀의 생애 이야기


 
1883.8.19 무능력한 아버지와 가난한 어머니의 둘째딸로 태어난다. 어머니(33)가 돌아가시고 수녀원에 맡겨진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열두 살 때 모든 걸 빼앗겼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 나는 죽은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힘든 세월을 보내다가 20살이 되어 '생트마리' 라는 수선집에 취직한다. 얼마후 수선집을 그만두고 '로통드 뮤직홀' 이라는 곳 에서 그녀는 카바라 가수생활을 보낸다.


그곳에서 '누가 코코를 보았는가'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덕분에 그녀가 그렇게 좋아하지않던 별칭, 코코샤넬이 탄생한다. 그곳에서 만난 '에티엔 발장'이라는 부자로 인해 '메종샤넬' 의 기초가 된 모자가게를 열게된다. 그러나 엔티엔은 그녀가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하지않았다. 어느날 에티엔 별장에서 만난 발장의 친구 카펠이란 남자, 후에 그녀의 회고에서 "그는 나의 애인인 동시에 나의 오라버니였고, 아버지였고, 가족이었다" 라고 말한다. 그 후 모자가게는 캉봉거리로 이전, 고급의 상실까지 하게되면서 '메종샤넬'을 기초 발판이된다. 발장과 카펠은 그녀를 동정했지만 그녀는 "발장과 카펠은 나를 동정했다. 하지만, 나는 맹수였다, 나는 차츰 삶을 배우고, 삶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녀는 여자를 고통스럽게 하는 '코르셋'이 없는 활동적인 옷을 원했다. 그녀의 디자인은 당시에 굉장히 파격적이였다. 화려하고 장식이 많았지만 샤넬의 디자인은 단순하고 편한스타일로 여들을 코르셋으로부터 해방 시켰다. 그녀는 특이한 디자인을 많이 했고 남자 속옷으로 많이쓰이는 '져시'로 또 다시 유행을 불렀다. 그녀는 여성들에게 자유를 주었다. 1993년 2차세계대전 반발 '메종샤넬'이 문을 닫는다. 그리고 15년후 돌아와 "왜 다시 일을 시작하느냐구요? 쉬는 게 지겹다는 걸 깨닫는데 15년이 걸린거죠 . 허무에 빠져 있기보단 차라리 실패하는 편이 더낫거든요."


그녀는 많은 남자들과 스캔들이 났고 피카소, 장 콧토, 스트라빈스키, 디아길레프 같은 저명한 예술인과도 교류했다. 그리고 가브리엘 샤넬은 많은 남자들과의 교류로 임신도 하게되지만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낙태까지 했다고도 말한다. 2차세계대전 당시 첩보원으로도 활동 하기도 했다. 비록 파란만장하고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버려졌고 평생을 몽유병으로 시달렸다. 인생의 끝자락에 "나는 혼자고 내인생은 실패야"하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패션은 지나가도 스타일은 남는다"

 라는 유명한 말은

"코코샤넬은 죽었어도 샤넬의 스타일은 남는다"

로 이어져 현대까지 여성들의 패션에서 증명되고 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